[일본]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2화

관리자 Lv.1
07-05 04:10 · 조회 57 · 추천 0

겸허, 견실을 모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제2화

입학했습니다, 즈이란(瑞鸞)학원 초등부.

그곳은 전생(?)의 내가 다니던 공립 초등학교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전통 있는 학원에 걸맞게, 유럽의 대성당 같은 외관. 정문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안은 최신 설비. 에어컨은 당연히 기본이고, 각 교실에 가습기며 정수기까지 다 있다. 겨울엔 바닥 난방.

온수 수영장도 테니스 코트도 축구장도 야구장도 콘서트홀도 있다. 미니 시어터까지 있다. 심지어 플라네타륨도 있다. 덤으로 돔형 온실에 다실(茶室)까지 있다. 그 밖에도 아직 더, 내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설비가 잔뜩 있었다.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가 공동으로 쓰는 시설도 몇 군데 있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내가 알던 '초등학교'라는 개념을 통째로 뒤엎는 것들뿐이었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광대한 부지를 자랑하고, 녹음이 우거진 이 학원은 통칭 '즈이란의 숲'이라고도 불렸다.

교복은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블레이저 타입. 중등부, 고등부는 라인이 들어간 흰 블레이저에, 여자는 리본, 남자는 넥타이. 리본과 넥타이는 중등부가 보르도색[1], 고등부가 짙은 파랑. 초등부만큼은 때가 눈에 안 띄게 하려는 건지 블레이저가 감색. 리본과 넥타이는 하늘색. 하나같이 정말 예쁘다.

역시나예요, 유명 디자이너. 이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학원에 입학하길 잘했다 싶어진다. 즈이란 교복은 '입어 보고 싶은 교복 랭킹'에서 늘 1위를 독차지하는, 여자애들이 동경하는 교복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도 즈이란을 지망한 이유 중 하나가, 이 귀여운 교복을 동경해서였지. 응, 응, 그 마음 알아. 다만 주인공은 그 교복을 몇 번이고 괴롭힘의 표적으로 더럽혀지게 되지만…….

중등부와 고등부는 도시락이냐 학식이냐를 고를 수 있지만, 초등부에는 급식이 있었다. 그런데 만드는 사람은 급식 아주머니가 아니라 셰프. 급식 당번 같은 것도 없다. 왜냐면 식당에 전담 서빙 담당이 따로 있으니까. 게다가 이걸 과연 급식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호화로운 메뉴. 비시수아즈[2]송아지 테린[3]이니 하는 게 예사로 나온다. 테이블 매너를 익히는 과정의 일환이란다. 음료는 홍차. 취향대로 레몬이나 밀크를 곁들이세요. 실수로라도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고 흰 콧수염을 만드는 어린애 따위는 없다. 디저트는 냉동 귤[4]이 아니라 크레프 쉬제트[5]다.

아아, 뭔가 이래저래 말도 안 된다. 그야말로 컬처 쇼크. 이런 기분을, 주인공은 고등부에 입학했을 때 맛보게 되겠지.

이 학원, 대체 학비가 얼마나 드는 걸까. 무서워서 되도록 생각 안 하려고 하지만.

그리고 즈이란학원의 최대 특징은, '모란회(牡丹の会, 피부안느(ピヴォワーヌ)[6])'라는 조직이다.

피부안느는, 초등부부터 즈이란에 다녀 온 내부생 중에서도 혈통, 가문, 재력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특권계급 즈이란 학생들의 집단이다. 중등부·고등부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원으로부터도 온갖 특별대우를 받는다.

초등부에는 프티피부안느(プティピヴォワーヌ)가 있다. 이 아이들이 중등부에 올라가서 그대로 피부안느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순혈 즈이란 학생만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아무리 혈통, 가문, 재력이 뛰어나더라도 중등부·고등부에서 중간 입학한 학생은 들어갈 수 없다.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가는 게 허락되는, 그야말로 모든 즈이란 학생이 동경하는 조직인 것이다.

그리고 나, 킷쇼인 레이카(吉祥院麗華)도 물론 프티피부안느의 멤버다. 『너는 나의 돌체(dolce)』에서도, 레이카는 피부안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멋대로 굴었지. 피부안느라는 것만으로 웬만한 일은 다 용서된다. 근데 학생을 올바른 길로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기관인 학교로서, 그거 좀 어떻게 된 거냐고.

피부안느의 멤버는, 교복의 교장(校章) 아래에 회의 문장인 모란을 본뜬 작은 배지를 단다. 진짜 보석으로 만들어져서 반짝반짝 빛나는 게 정말 예쁘다. 그리고 이게 학원 내 면책특권의 프리패스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쁘긴 한데 좀 무섭네.

참고로 왜 '모란회'냐면, 모란의 꽃말이 '왕자(王者)의 풍격[7]'이라서, 란다. …뭔가 이제, 그런 발상 자체가 여러모로 무섭네.

피부안느 멤버라는 것만으로, 다른 학생들에게는 동경 반, 두려움 반. 그야 그렇지. 피부안느와 마찰을 일으키면 이 학원에 계속 다니는 건 어려워진다. 게다가 그 가족까지도 멤버가 지닌 배경에 궁지로 내몰려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으니까. 현명한 인간이라면, 피부안느와는 건드리지도 얽히지도 않는 게 상책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아니, 그게 안 되지만요. 멤버니까요. 아주 제대로 발 담그고 있다고요. 아아, 무서워. 그리고 걔들의 금전 감각이 나한테는 더더욱 무섭다. 왜냐면 나한테는 아직도 고등학교 시절 한 달 용돈 오천 엔의 감각이 배어 있으니까. 초등학생한테 대체 얼마나 되는 용돈을 쥐여 주는 거냐. 그건 이제 용돈이 아니라 경비다. 응,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러저러하여, 본가의 권력과 재력 덕분에 나는 학원에서도 그럭저럭 쾌적하게 지내고 있다. 아니, 그럭저럭이라니 사치스러운 소리인가. 아주 쾌적하게 지내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벌써 무리까지 거느리게 됐고 말이지. 이 아이들, 『너는 나의 돌체』에서도 레이카의 추종자 역할이었지. 이렇게 옛날부터 곁에서 장단을 맞춰 주고 있었던 건가.

겨우 6년밖에 안 살았어도, 처세술이란 건 저절로 몸에 배어 버리는 거구나. 아아 왠지 각박하다. 애들 세계도 참 힘들다.

근데 사치를 좀 부려 보자면, 추종자보다 친구가 갖고 싶다.

어라? 『너는 나의 돌체』에서도 '킷쇼인 레이카의 친구'라는 캐릭터는 안 나왔는데, 혹시 나 앞으로 친구 제로? 앗, 안 돼. 눈물이…….

만화는 주인공이 고등부에 입학하는 데서 시작되니까, 레이카가 그때까지 어떤 학원 생활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 자기보다 아래인 사람들을 깔보고, 통칭 '레이카 포즈'로, 왼손은 허리에 얹고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가게 입가에 대고서 큰 소리로 웃어 젖히며 제멋대로 굴었겠지. 황제한테 치근덕대면서.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런 짓은 절대 못 한다. 파멸의 발소리가 들려와 버리니까. 게다가 '오~홋홋홋' 같은 건, 웃기려는 목적 말고 진지하게 할 배짱은 갖고 있지 않아서. 나도 부끄러움이란 단어 정도는 알고 있단 말이지. 뭐 즈이란이라면, 나 말고도 레이카 포즈를 하는 학생이 예사로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 부가정보

  1. 보르도색 (ボルドー / Bordeaux) —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지방에서 나는 적포도주의 짙고 깊은 적자색을 가리키는 색 이름으로, 1891년경 와인 이름을 따 공식 명칭이 되었다. 버건디, 마룬과 비슷한 어둡고 중후한 빨강이며, 격식 있는 교복 리본·넥타이 색으로 자주 쓰인다. 참고 링크
  2. 비시수아즈 (ヴィシソワーズ / Vichyssoise) — 감자·부추·양파를 삶아 으깨고 생크림을 더해 차갑게 식혀 내는 프랑스풍 크림 수프다. 20세기 초 뉴욕 리츠칼튼 호텔의 프랑스 태생 셰프 루이 디아가 어머니의 소박한 감자·부추 수프를 응용해 고안했고, 고향 근처 온천 도시 비시(Vichy)에서 이름을 따왔다. 참고 링크
  3. 송아지 테린 (子牛のテリーヌ / Terrine de veau) — 테린은 고기·생선·채소를 다져 도기 틀(테린)에 채우고 천천히 익힌 뒤 차게 굳혀 썰어 먹는 프랑스 전채 요리로, 파테와 비슷하지만 재료를 더 굵게 써는 편이다. 송아지 테린은 송아지고기를 주재료로 한 것으로, 코스 요리의 격식 있는 애피타이저로 흔히 쓰인다. 참고 링크
  4. 냉동 귤 (冷凍ミカン) — 온주 밀감을 얼린 일본 특유의 간식으로, 1955년 오다와라역 매점에서 처음 판매되며 여름철에도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기차 여행의 추억거리이자 전국 학교 급식의 단골 디저트로 자리 잡았기에, 여기서는 '소박한 서민 급식'의 상징으로 언급된다. 참고 링크
  5. 크레프 쉬제트 (クレープシュゼット / Crêpe Suzette) — 얇게 부친 크레프에 캐러멜화한 버터와 오렌지(귤) 즙·껍질로 만든 소스를 끼얹고, 그랑 마르니에 등 오렌지 리큐어를 부어 손님 앞에서 불을 붙여(플랑베) 내는 프랑스 디저트다. 19세기 말 몬테카를로 또는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영국 왕세자에게 대접하며 탄생했다는 여러 유래설이 전해진다. 참고 링크
  6. 피부안느 (ピヴォワーヌ / pivoine) — 프랑스어로 모란(작약속 식물)을 뜻하는 단어다. 작중 특권계급 학생 조직 '모란회(牡丹の会)'의 별칭으로, 조직명인 모란을 프랑스어로 우아하게 부른 것이다. 참고 링크
  7. 왕자(王者)의 풍격 (王者の風格 / 모란의 꽃말) — 모란은 원산지 중국에서 '백화(百花)의 왕'으로 불릴 만큼 크고 화려해 예로부터 최고 격식의 꽃으로 사랑받았고, 여기서 '왕자의 풍격', '부귀' 같은 꽃말이 생겼다. 겹겹이 포개진 큰 꽃잎이 당당한 위엄을 연상시킨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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